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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대학원 졸업논문

디지털 이미지의 정치성 :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과 저작을 경유하여 기 드보르의 실천 전략을 재질문하기
  • 저자명|이미연
  • 학위|석사
  • 졸업연도|2019
  • 담당교수|서현석

주제어

히토 슈타이얼, 기 드보르, 스펙타클, 빈곤한 이미지, 순환주의, 포스트 인터넷, 경제적 게임화, 디지털 이미지, 전용, 예술적 실천

국문초록

본 연구는 슈타이얼의 작품과 저작이 기 드보르와 마찬가지로 관객과 독자를 흡수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해석의 확정이 아니라 해석과 사회적 실천의 매개를 위한 것이라고 전제한다. 동시대의 특정한 시간성을 드러내는 작품들 중 하나로 슈타이얼의 작품과 저작을 압축적으로 경유하면서, 슈타이얼의 작가적 입장을 기 드보르의 사회에 대한 분석적 시각 및 개념과 함께 패치워크한다. 이 패치워크는 포스트 인터넷 시대로 불리우는 동시대 상황에서 드보르가 말한 실천의 의미가 어떤 변화 속에서 전이되고 또 전용될 수 있을지, 이미지 정치, 이미지 경제가 새롭게 구축하는 심화된 스펙타클의 세계에서 이미지의 정치성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지, 만약 이미지의 정치성이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재설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실천이 가능할지를 묻기 위함이다.
오늘날 스펙타클은 변화하는 계속성 속에 있다. 각종 디바이스와 온라인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일상 속에 포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그 생산과 소비, 배포의 전 과정에 자본논리가 결합되어 있으며, 사회적 관계 속에 원자화되고 분산된 형태로 오늘날의 스펙타클을 집약한다. 또한 웹 2.0 이후 경제적 게임화는 더이상 창조적 욕망을 형성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운용한다는 대안적 스펙타클로서의 놀이가 아니다. 과장된 디지털 이미지의 효과 속에서 자본과 전쟁, 이미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슈타이얼의 <유동성 주식회사>와 게임화된 사회를 구현하는 <태양의 공장>을 스펙타클 개념과 함께 분석한다.
이러한 스펙타클 속에 디지털 이미지는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진부한 것이 되었다. 진실을 담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시성이 갖는 정치적 의미도 희박해졌다. 이미지의 정치성이란 이러한 진부함을 다시 위반적 존재이자 대항하는 실천에의 욕망으로 채우는 일이 된다. 슈타이얼의 <11월>과 <보이지 않는 방법-지긋지긋한 훈육적 MOV파일>은 진실의 정치 속에 불확정적으로 남은 이미지, 편재된 가시성 속에서 왜곡되기 쉬운 이미지의 결손을 받아들이며, 미디어의 속도 속에 유랑하고 순환하는 이미지의 힘을 주장한다. 이를 개념화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는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전통적 주체의 자리를 거부하는 존재이자 정치사회적 흔적들을 매체적 특성 속에 관통하는 사물 이미지에 해당한다. 슈타이얼은 이러한 이미지에 참여하기를 제안하며 스펙타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위반적 존재들의 운동성을 추동한다.
그렇다면 스펙타클의 주요거점이자 빈곤한 이미지가 거주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대안적 실천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초기 네트워크 기술에 대한 긍정성을 기술자본이 전유함으로써 일상화에 기여한 웹2.0 이후, 예술은 포스트 인터넷 상황에 대한 반성적 담론과 함께 가능한 실천적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담론 속에 속해있는 슈타이얼 또한 인터넷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특히 슈타이얼의 ‘순환주의’는 웹 2.0의 가장 기본적인 모토를 전용하는 극단적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언제나 진행중인 질문들에 해당한다. 디지털 이미지의 진부함과 인터넷 환경의 일상성이 전술의 무기가 될 수 있듯,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전용의 방법을 시대 속에서 찾아낸다. 따라서 예측하기 어려운 기술의 진화와 연약한 가능성의 세계에서 드보르의 전용의 실천은 상상의 노동을 통해 앞으로도 끝없이 재설정되어야 한다.

영문초록

This thesis postulates that the work and writing of Hito Steyerl intersect with those of Guy Debord in their intent to steer the viewer/reader rather than absorb them and to mediate interpretation and social practice rather than cement the former. It navigates its way through a condensed study of Steyerl’s demonstration of a particularly contemporary temporality and goes on to stitch her artistic stance together with Debord’s analytic perspective on and conceptualization of the social. The resulting patchwork is intended to pose a series of questions concerning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action in the post-Internet age. What sort of changes in the present would enable the potential transference and appropriation of meaning in Debordian practice? Can we once again anticipate the politics of the image in a world of reinforced spectacle constructed afresh out of image politics and image economies? If the politics of the image calls for new strategies, what must these strategies reconfigure, and what are the practices to which they may lead?
Spectacle currently resides within a shifting continuity. The digital image, having traversed an array of devices and online platforms to saturate our daily lives, arrives with the logic of capitalism infused into each of the processes through which it is produced, consumed, and distributed. Atomized and scattered throughout social relations, it epitomizes the modern-day spectacle itself. Since the beginning of Web 2.0, economic gamification has ceased to function as a source of amusement rife with the alternative spectacle of formulating creative desire and volitionally making use of one’s life. This thesis therefore examines the concept of the spectacle alongside the progression of capital, warfare, and images which surfaces through the filter of exaggerated digital effect in Steyerl’s Liquidity Inc. and the gamified society that materializes in Factory of the Sun.
Within such spectacle, the digital image is at once the pinnacle of fascination and the height of banality. Not only is it incapable of providing any assurance for the truth, it has surrendered much of the political significance which accompanies visibility. A politics of the image accordingly entails reanimating that banality with transgressive presence and the desire for a resistant course of action. Steyerl’s November and How to Not Be Seen: A Fucking Didactic Educational .MOV File consequently embrace the indeterminate image left behind in the politics of truth and the deficiencies of the image in its susceptibleness to the distortions of a skewed visibility, thereby affirming the image as a thing of power as it travels and circulates within the speed of media. By encapsulating these concerns, the poor image comprises, on the one hand, an entity ousted from the political and opposed to taking on the position of the traditional subject, and on the other, an object image that penetrates in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medium with its traces of the socio-political. Steyerl invites us to participate in these images and propels the transgressive beings hidden behind the spectacle into a state of mobility.
How far, then, can alternative practice
go in the online spaces that provide spectacle with its primary foothold and the poor image with its habitat? Following Web 2.0?the product of technological capital appropriating and conventionalizing the positivity surrounding early networks?art has been searching for practical strategies to align with its introspective discourse on post-Internet affairs. Steyerl, being part of this discourse, refuses to disavow the possibilities of the Internet altogether. Her concept of circulationism, in particular, could perhaps furnish us with a radical model of appropriating the most fundamental motto of Web 2.0.
The discussion laid out here corresponds to a perpetually ongoing inquiry with no attainable end. Much as the banality of the digital image and the conventionality of Internet environments can serve as tactical weaponry, humanity has always discovered new strategies of appropriation at every juncture of its history. In a world of unpredictable technological evolution and fragile possibility, Debord’s appropriative practices must therefore continue to be endlessly reconfigured through the labor of imagination.

비고 : N1887